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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 

기사승인 2023.03.29  09: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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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단편소설집

  삶은 알고 장미는 모르는 어떤 소용돌이.
  장미는 모르고 삶도 모르는 어떤 소용돌이.
  장미의 꽃잎을 혀라 부른 시인이 있다. 혀란 안에 있는 것 같아도 언제나 바깥을 넘어서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랑을 입안에 담긴 ‘혀’라고 바꿔본다. 쓴맛을 알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달콤한 맛을 기대하는 혀. 이 소설집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들이 그렇다. 가족 간의 사랑, 부부 간의 사랑, 자식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각 장마다 공통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소용돌이 치고 있는 안과 밖의 차이는 크다. 이 책은 기대하는 만큼 달콤하지 않다. 그렇다고 파국으로 치달리는 사랑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담담하게 빠져나온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법을 아는 것처럼 상처를 받았으나 회복이 가능하다. 정정화 작가는 2015년  한 해에 농민신문과 경남신문 신춘문예 부문 소설로 당선했다. 등단 후, 첫 번째 소설집인 <<고양이가 사는 집>>을 통해 현실의 다양한 인간관계에 감춰진 위선과 거짓된 면면들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꽃눈>>은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 소설 중 첫 장에 실린 제목이다. 유일하게 남자의 시선으로 병든 아내를 위한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오랜 간병은 빈곤으로 이어진다. 지호는 아내의 수술비를 대지 못해 노모에게 짐을 지운다. 누나인 지영의 결사반대가 있었지만 논을 팔아 수술비를 대준 노모였다. 다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부탁하기 위해 고향에 왔지만 마음이 무겁다. 목련나무에 눈이 내려 흰 꽃이 핀 것처럼 보이자 목련꽃처럼 곱던 아내, 수아의 젊은 날이 아른거린다. 노모는 지호가 올 때마다 닭을 잡고 지호는 억지로 삼계탕을 먹는다. 수술을 해도 나을지 모르는 수아와 이 집만은 안 된다는 노모사이에 긴박감이 흐른다. 간병을 한 세월이 오래됐다는 노모의 지친 눈빛에 지호는 마음이 약해진다. 갈등을 거듭한 지호는 집문서를 받아서 나왔을까. 마당 목련나무엔 꽃눈이 송이송이 달려 있고...
  작가에게 꽃은 중요한 소재다. 꽃을 통해서 인물을 전개해간다. 피고 지는 과정이 삶과 닮았다. <담장 너머 접시꽃>은 부부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꽃을 감상하는 나만의 놀이’를 중요시하던 접시꽃을 남편이 베어버리자 아내는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된다. 집을 나와 태화강 사나운 물살에 가까스로 구해준 여자를 만난다. 살고 싶지 않았다는 아내와 집착과 데이트 폭력에 시달렸던 여자. 꽃으로 가득한 여자의 집에서 상처받은 사람끼리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손등에 키스를 하는 두 여자의 야릇한 설정이 파격적이다. 꽃은 회복의 소재인지도 모른다. 운명의 갈림길에 꽃이 놓여있다. <대숲에 깃들다> 역시 해바라기가 등장한다. 민석이 해바라기꽃 두 송이를 꺾어 지현에게 청혼하지만 지현은 손을 내미는 자신의 손과 꽃을 가꾸던 엄마의 손이 겹친다. 어린 자식들을 팽개치고 낯선 남자에게 가버린 엄마. 지금도 꽃을 가꾸며 살고 있을까. (78쪽) 엄마는 노란 해바라기꽃 원피스를 입고 떠났다. 지현은 엄마처럼 비정한 사람이 되기 싫다. 손을 내밀어 자신을 가둬둔 결혼하지 않겠다는 틀을 깰 수 있을까.
  제각각인 사랑이지만 이 소설집은 운명에 순응하는 것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에밀리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처럼 증오나 복수에 불타는 사랑은 없다. 안온하다. 단편소설의 묘미란 이어질 장면을 독자에게 맡긴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의 심성이 모질지 못해서일까. 왜 당신은 나를 바라보지 않았나 같은 파괴적인 치정도 춤을 추며 끝을 맺는다. 
  사랑을 무엇으로 정의할까. 나는 램프를 지니고 있었고/ 너는 불을 지니고 있었지/ 심지는 누가 팔아버렸을까. 자크 프레베르의 시다. 램프가 있고 불도 있지만 심지가 없으면 불은 붙지 않는다. 사랑이 그렇다고 믿는다.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유기체다. 우리는 또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 작가가 손을 뻗는다. 

홍혜향<혜윰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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