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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기사승인 2020.09.23  10: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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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글

2020년과 함께 시작된 전염병이 끝날 기미 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고,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곧 좋아질 것도 같은데 그럴 때마다 클럽에서, 종교시설에서, 집회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다.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며 쌓인 분노가 실체가 되어 방향성 없이 터지는 모습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선한 연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은 1980년대에서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혁명적인 사건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이자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 실린 작품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는 연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보지 못하고, 보고도 애써 모른 척 하거나 혹은 혐오하는 순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결코 가볍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그럼에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배경이 너무나 친근하고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흔히 마주하는 상황을 펼쳐 놓고 작가는 특유의 무덤덤한 말투로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납게 몰아붙이거나 길게 한탄하지 않는 그 간결함 때문에 오히려 독자는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만다.
  〈d〉에는 버스 사고로 연인을 잃고 집 안에 갇혀있다 비로소 바깥으로 나온 d가 있다. 그는 세운상가의 화물 상차 일을 하며 앰프를 수리하는 여소녀를 만난다. 평생 고장 난 기계를 고치며 살아오는 동안 ‘오디오 팔던 사람들, 부품상들, 도란스 기술자, 스피커 제조업자 … 그와 같은 공간에서 한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는 ‘세상 적막한 곳에 당도해 있었다.’(p.40) 여소녀가 d에게 “나 알지?”라고 묻는 순간 d는 말문이 막힌다.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질문을 듣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아는 얼굴이라는 것을 알았’기(p.45) 때문이다. 상대를 그저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우리는 우리가 보는 수많은 것들을 과연 다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나. 후에 d는 여소녀로부터 구입한 오디오세트를 자신이 사는 고시원 방에 설치하고 연인이 유품으로 남긴 LP를 크게 튼다. 그제까지 ‘매트리스를 짓누를 때 말고는 존재감도 무게도 없어 무해한 이웃들’이 쿵,쿵, 벽을 친다.(p.65) 서로에게 유령과 같은 존재였던 사람들이 비로소 물리적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d의 방안에 울렸을 음악과 벽을 치는 소리가 독자의 작은 세계를 뒤흔들며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작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주인공은 언젠가 완주(完走)라는 제목으로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동성의 연인 서수경과 홀로 아이를 키우는 동생 김소리, 어린 조카 정진원과 지내는 그는 어느 날 조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우연히 모자를 훔친 물고기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물풀 속으로 들어가고 본래 주인인 거대한 물고기가 따라 들어가 모자를 되찾아 가는 이야기였다. 거대한 물고기가 떠난 후 물풀만 남은 마지막 장에서 조카는 당황하여 ‘마지막 장을 손가락으로 긁어 떼어내려고’(p.160) 하더니 물고기가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 그는 물고기가 죽었거나 먹혔다는 대답을 차마 하지 못한다. 일방적인 강자의 승리, 약자와 연대하지 않는 강자가 존재하는 세계를 어린 조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는 우리가 미처 인식 하지 못한 채 배제해 왔던 수많은 약자들 혹은 가까운 이웃들의 모습을 빠짐없이 그린다.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곧 그들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p.103) 두 작품<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사이에 놓인 문장이다. 요즘 같은 고난의 시기에 우리가 터뜨리는 분노와 혐오의 빗줄기가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쏟아져내릴지 《디디의 우산》을 읽고 오래 고민해 볼 일이다.

이주현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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