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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을 기다리며

기사승인 2024.09.04  09: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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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한가로이 거처하니 이웃이 드물고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숲 오솔길은 황폐한 정원으로 통한다
鳥宿池邊水(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자고
僧推[敲]月下門(승퇴[고]월하문)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두드린다]
 당나라 때 시인 가도(賈島)는 <題李凝幽居(이응의 유거에 제함)>이라는 시를 일단 마무리했는데, 넷째 구절인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두드린다]”에서 ‘推(밀 퇴)’자가 좋을까 ‘敲(두드릴 고)’자가 좋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너무도 고심한 까닭에 가도는 마주오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고관의 행차 앞을 가로막는 일은 중한 죄가 되었기에, 병졸들은 가도를 주인공 고관 앞에 끌고 와 무릎을 꿇렸다. 그런데 그 고관은 당대의 대 문장가였던 한유(韓愈)였다.
 한유 앞에서 가도는 자신이 고관 나리의 행차를 눈치채지 못한 까닭을 솔직히 말하고 사죄했다. 그러자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역시 ‘민다’라는 뜻의 ‘퇴推’자보다는 ‘두드린다’라는 뜻의 ‘고敲’자가 더 나을 성싶네.” 결국 가도는 대 문장가 한유의 뜻을 따라 ‘고敲’자로 시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한유와 가도는 시우(詩友)가 되었다.
 당나라 때 승려 시인 제기(齊己)가 〈조매(早梅:이르게 핀 매화)〉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는데, 뭔가 내키지 않는 느낌이 있어 시인 정곡(鄭谷)에게 보여주고 가르침을 구했다. <조매>에는 “앞마을에 눈 깊었는데, 어젯밤 매화 몇 가지 피었네(前村深雪裏, 昨夜數枝開)”라는 구절이 있었다. 정곡은 이 구절에 대하여 ‘몇 가지(數枝)’는 제목인 ‘이르게 핀 매화’와 어울리지 않으니 ‘한 가지(一枝)’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정곡의 말대로 하니 “앞마을에 눈 깊었는데, 어젯밤 매화 한 가지 피었네”가 되어 과연 ‘이르게 핀 매화’와 잘 어울리게 되었다. 제기는 저도 모르게 가사(袈裟 : 승려가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법의法衣)를 걷어 올리고 정곡에게 절을 하였고, 이후 사람들이 정곡을 일자사(一字師)라고 칭송했다. 
 나는 20여 년 전부터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때의 제자 중에 대학 시절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나보다도 훨씬 잘나가는 소설가다. 그녀는 소설가라는 직업과 국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요즘 고등학교에서 하는 강의는 자기소개서 쓰는 법에 치중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수업을 안 듣는 학생에게 꼭 필요한 자기소개서 쓰는 일이라도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학생들은 한 문장을 수정하기보다는 아예 다 써달라고 한다고 한다. 소설인지 자기소개인지 모르는 남의 인생을 창조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나의 제자도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첨삭해 주길 원한다. 끊임없이 퇴고하는 노력보다는 글쓰기를 기술로 배우려 하고 있다. 정곡처럼 한 글자만 고쳐주는 선생이 좋은 스승이다. 학생들의 공부에 간섭하는 부모나 선생은 결코 좋은 스승이 아니다. 따라서 한 글자만 고치면 되는 시문을 쓰기까지의 노력은 오롯이 제자의 몫이다. 배움을 거저 얻으려 드는 제자의 곁에는 좋은 스승이 결코 깃들지 않는다. 청출어람을 기다리는 것은 나의 몫이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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