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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의 인생상담]아이의 기억

기사승인 2024.09.04  0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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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부부상담사>

아들아이는 늘 머리맡에 야구 방망이를 두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그랬다. 야구 방망이를 베란다로 치워 놓아도 어느새 그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다. 도둑이 들어오면 휘두르려고 손 닿는 곳에 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릴 적에 우리 집에 신창원이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창원은 강도 살인죄로 복역 중 1999년에 탈옥하였다. 그 무렵 방송에서 얼마나 떠들어 댔는지 모른다. 아이는 그때 우리 나이로 고작 5살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유추해 보았다. 아이는 방송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들으며 불안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래서 잠을 자다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꿈속에서 신창원은 우리 집에 있었다.
꿈이 생시로 굴절된 기억 때문에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까지 또 다른 신창원이 우리 집을 침입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그래서 야구 방망이가 머리맡에 있어야 했다.
딸아이에게도 비슷한 기억의 굴절이 있었다. 자기가 어릴 적, 내가 오빠와 함께 자기를 문밖으로 내쫓았다고 했다. 몇 살이었는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하늘에 맹세코 아이들을 문밖으로 내쫓은 적은 없었다. 부끄럽지만 내쫓겠다고 협박한 적은 몇 번 있었을 것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어떻게 그걸 확신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쉽다. 딸이니까 그렇다. 그럼, 아들은 문밖으로 쫓아도 되고 딸은 안 되냐? 그 무슨 차별적 언사냐? 이렇게 말해도 할 수 없다. 나이가 어리건 아니건 상관없이 여성이기에 쉽게 노출되는 위험이 좀 많은가. 나는 언제나 그런 위험에 민감해서 딸을 문밖으로 내보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 딸은 사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이 일을 남들이 있는 자리에서 까발리는 걸 좋아한다. 아주 아주 얄밉다.
가만 보면 이 두 개의 굴절 경험에는 공통점이 있다. 굴절의 밑바닥에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도둑이 또 우리 집에 들어오면 어떡하나, 엄마가 나를 내쫓으면 어떡하나. 그리고 그 불안은 부분적으로는 실제 일어난 일에 기반하고 있다. 방송이나 어른들이 신창원을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면, 내가 문밖으로 내쫓겠다고 협박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억의 굴절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굴절된 기억은 진짜로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면서 힘이 강해진다. 나중에 자꾸 야구 방망이를 치우지 않으려면, 자꾸 문밖으로 내쫓았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면 아이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실이 아닌 것을 믿고 불안에 떨었을 아이와 엄마에게 쫓겨 났었다는 기억으로 엄마를 미워했을 아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또 이런 굴절은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무섭고 슬프고 화가 치미는 에피소드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더 무서워지고 더 슬퍼지고 더 화가 치밀게 된다. 그래서 강해진다.
그런데 무섭고 슬프고 화나는 흑역사에서 아이와 내 기억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하게도 모두 아들과 관련되어 있다. 몇몇 에피소드는 첫애이기 때문에 혹은 아들을 대하는 지식이 없어서 겪은 시행착오에다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는 괜찮다고 하는데 정작 상처를 준 나는 아직도 이런 일들이 생각나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내가 쓰고 있는 단편에 아이의 눈으로 그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도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눈물이 절로 나온다. 어쩌면 나는 글쓰기로 아들에게 속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용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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