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경영학박사> |
9월은 거둠달이다. 과일나무의 가지마다 맺은 열매를 거두는 달이라는 의미이다. 열매달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진열된 햇과일들을 보면서 가을을 느낀다. 한껏 올랐던 사과값이 거의 절반으로 내려갔다. 날씨가 유난히 더웠지만 과일은 달다, 낮엔 폭염으로 지치고, 밤엔 열대야가 잠을 설치게 ㅤㅎㅔㅆ는데 이제 긴 무더위가 꼬리를 내리고 있다. 계절은 어기거나 거짓을 모른다. 가을은 씨뿌리고, 심은 대로 거두는 계절이다. 거둠은 곡식이나 열매를 수확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우리 삶의 과정과 관련이 있다. 성경은“자기를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대로 거둘 것이다(갈6:7)라고 했다. 삶의 현재는 자신의 의도와 선택으로 인한 결과이다. 우리 속담에도“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고 했다. 거둠은 속임으로 왜곡할 수 없는 삶의 원리이다. 거두다를 영어에서는 성취하다(Achieve), 벌다(Earn), 모으다(Collect), 달성하다, 획득하다(Gain), 이익을 얻다(Reap), 모이다(Gather), 추수하다(Harvest), 보살피다(Take care)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말 사전에는‘멈추어 그치거나 철회하다, 받아들여 모으다, 얻어 내거나 이루다로 쓰인다’이다. 의미들을 곰씹으면 거둠은 들숨과 날숨과 같다. ‘거두어 들이다와 거두어 내다’로 구분된다.
거두어 들임에는 때가 있다. 기원전 935년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전11:4)”고 했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선택이나 실행의 때를 놓치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거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용서를 빌기 위한 사과의 때를 놓쳐서 더 큰 낭패를 겪는 경우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일이든지 거둘 때가 있는데 무르익음을 기다리지 못하고 설익은 것을 따려고 애쓴다. 정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뀔 것으로 착각한다. 조급함이 일을 망친다. 주식 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Warren Buffett. 1930~)의 투자방법은 시장의 타이밍을 피하고 개별 주식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매수 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다. 그는“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업의 주가는 결국 본질적인 가치를 반영하게 된다”는 믿음을 가졌다. 거둠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거두어 들임은 멈추어 그치거나 철회하는 것이다. 실패가 뻔한대도 멈추지 않고 돌진하면 사고를 내고 만다. 되돌아 가거나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돌이키고 그쳐야 할 때에도 주위의 비판을 두려워하고, 명분을 핑계로 고집스럽게 밀어 붙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거둠은 수용의 의미가 강하다.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도 가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신뢰가 거둠이다. 성과를 거두어 들이는 일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싸뿌리고, 가꾸고, 거름주고, 돌봄에 최선을 다한 농부만이 거두는 보람을 성취한다.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최소의 선수로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엄청난 연습과 훈련, 수 많은 실패의 경험을 참고 견디어 내야 했다. 어떤 일이든지 쉽게 거둘 수 없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땀을 쏟고 에너지를 소비한만큼 거두는 것이다.
거둠에는 거두어 들이는 것 이상으로 거두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불순물을 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다. 열매를 거둘 때 알곡만 거두어지지 않는다. 쭉정이도 있고 가라지도 있고, 껍질도 있다. 이런 비본질적인 것들을 거두어 내야 진짜만 남는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생긴 삶의 찌꺼기들을 거두어 낼 때 담백한 삶의 맛을 낸다. 찌개국물에 떠오르는 기름찌꺼기를 거두어 내야 제맛을 내는 것과 같다. 길위에 방해물을 거두어 내지 못하면 막히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아침 햇빛을 맞이하려면 커튼을 걷어내야 한다. 낡아버린 관습과 고정관념의 장막을 거두어 내야 소통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아픔, 원한, 미움, 좌절 등 부정적인 마음의 벽을 거두어 내지 못하면 불행을 벗어나지 못한다. 눈을 가린 확증편향은 편견과 오해로 올바른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직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이유로 구성원의 자격과 율법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최소한의 경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변하고 있다. 다양성과 다문화,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지역과 집단, 이데올로기, 팬덤으로 쳐진 울타리를 걷어내는 합의가 필요하다. 서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공감대를 이루어 갈 때 사회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안산신문 ansan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