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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인간

기사승인 2024.06.12  10: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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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첫 마디다. 나를 사로잡은 첫 줄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환희의 인간>을 선택하기 전 보뱅이 쓴 산문집 <흰 옷을 입은 여인>을 읽었다. 표지엔 열일곱 살 무렵의 단아한 에밀리 디킨슨이 있다. 사진 찍는 걸 거부한 탓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진이다.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거부하며 운둔의 삶을 살았던 시인. 제목이 없는 시를 1775편이나 쓰고 발표작은 열 편도 채 안된 시인. 보뱅은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녀를 불러온다. 그의 방에서 어린 디킨슨이 살아 움직인다.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롭고 섬세하다. 보뱅의 삶은 어떤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문단과는 거리를 둔 보뱅. 고독한 생활을 하며 50권 이상의 시집과 에세이를 남기고 그는 떠났다. 디킨슨처럼 홀연히. <환희의 인간>은 오월의 하늘처럼 맑은 문체가 끌어당긴다. 동떨어진 삶을 살며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 그는 절망 끝에 환희가 있다는 것처럼 푸름이 가득한 글을 안긴다. 문장마다 빛이 반짝거린다. 햇빛과 별빛과 바람을 품은 숨결이 느껴진다. 모두 열여섯 개의 파트로 나누어진 그의 글을 읽노라면 감각적인 희열에 사로잡힌다. 차가운 물을 맞는 것처럼 머리가 시원해진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 술라주에 관한 글에 압도당한다. 보이지 않는 술라주의 그림을 보기 위해 보뱅을 따라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다. 도굴된 무덤처럼 비어있는 동굴을 따라가면 술라주의 그림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온다. 보뱅은 검은색에서 선사시대의 성스러운 짐승들 사이에 있는 것처럼 이끌린다. ‘하얗게 빛나는 빛이 짐승들의 옆구리를 비춘다’. (38쪽)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던가. 내게 보이는 검은색은 먹구름이다. 먹구름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곧 천둥과 섬광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 그런 날 검은색에 압도당해 바깥이 두렵다. 보뱅은 미술관을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플라타너스를 보며 별빛이 끓고 있는 은하수를 떠올린다. 검은 하늘에 박힌 하얀 별을 떠올리며 그는 아름다운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연주합니다. 차갑고도 정열적인 방식이죠. 내킨다면 나를 따라오세요. 악보라는 북극으로, 음악이라는 어두운 소나무 밑으로. 할 수 있다면 나를 따라오세요. 내가 가는 곳으로, 내가 연주하는 곳으로. 오직 순백의 음악만이 있는, 아무도 없는 그곳으로. (50쪽) 보뱅이 이끄는 연주가의 선율은 어린아이의 시선처럼 맑고 아름답다. 수많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장밋빛 찬사를 받은 글렌 굴드는 바흐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것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음악의 고독’과 ‘고독의 고독’과 약속이 있다며 캐나다로 떠날 결심을 한다. 굴드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본다는 것이다. 보는 것은 듣는 것을 방해하는 것. 굴드는 온전히 레코드만 남겨놓고 싶어 한다. 나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중요시한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글의 소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재가 정해지면 사물에 말 걸기가 시작된다.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연과 사물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사물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보뱅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음악을 듣게 한다. 바흐도 굴드도 없는 음악을. 카세트도 없이 듣는 음악에는 꽃 한 다발처럼 환희가 가득 차 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빛보다 더 환한 언어들로 글을 쓴 <환희의 인간>을 유월에게 넘긴다. 

홍혜향<혜윰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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