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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약 2년 전 「버즘나무 댁」 이라는 제목의 한 수필을 통해서다.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먼 친척 언니이자 자신의 집 식모에 가까웠던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독자인 나를 아픔 가득한 인생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그녀의 자전적 수필집 『이번 생은 연습이었어』를 읽으면서 더 이상 진도를 못 나가고 몇 번을 다시 덮어야 했을 만큼 먹먹함의 순간들을 또다시 경험해야 했다.
책 속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오줌이 고드름으로 솟아 있는 십이월의 정낭에서 알몸으로 바들거리던 나의 첫 세상, 아차 하며 한쪽으로 빨리 옮겨 앉은 어머니의 재치가 나를 살렸다고 했다. (중략) 이름마저 성의 없이 정낭의 꽃으로 지어진 내 삶의 첫 줄이었다.” (「늦은 터닝 포인트」)
아버지의 잦은 외도, 그에 따른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 속에서 자라난 소녀는 긴 밤을 이야기 만들기를 하며 살았다. 하지만 공부를, 그중에서도 문학을 하고 싶었던 열망을 계집애라는 이유로 결혼이라는 올무 속에 주저앉혀 버린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
그런 남편마저 일찍 죽고 세 명의 어린 자식들과 밥집을 하며 홀로 세상을 헤쳐 오다 보니 어느덧 백발이 되어버린 어느날, 우연히 눈에 들어온 주민 센터의 ‘문학 창작반’ 벽보가 그녀의 가슴을 널뛰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여러 문학상에 입상하고 시집에 이어 수필집까지 출간하게 된 그녀다.
문학을 하는 이유가 ‘막힌 것을 토해내고 들숨과 날숨으로 숨 쉬고 싶어서’라고 고백하는 그녀에게 문학이 주는 의미가 얼마만한 것인지 제 삼자가 감히 그 크기를 가늠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문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매우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이 뻔하디 뻔한 인생살이 한탄이나 감성몰이 수준에 머물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 먹먹한 울림과 긴 여운을 선사해주는 경지에까지 이른 것은, 타고난 문학적 재능에 잠 못 드는 고민과 뼈를 깎는 수련의 시간이 더해진 결과이리라. 그리하여 비로소 속엣것을 제대로 토해낼 수 있는 적확한 언어와 문장 구사력을 갖췄을 것이다.
그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죽음이 예약된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삶을 위로받고 반성을 했다고 한다. 냉철함과 잘생김과 오만함과 재력까지 갖춘 전직 검사로써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만신창이가 되도록 걸판지게 한바탕 뒹굴며 살았을 남자,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병실에서조차 거울 속 자신의 과거 허상을 끌어안고 살았던 그 사내의 죽음을 떠올리며 그녀는 혼자 묻는다. ‘그는 편안하게 떠났을까? 놓치기 아까운 이번 생을 어떻게 놓고 갔을까?’(「손거울을 사랑했던 남자」)
‘항상 배제된 행운 속에서 이번 생은 살패작임을 느끼며 살았다’(「늦은 터닝 포인트」)는 그녀, 자신을 가리켜 ‘발송자의 주소가 없어 반송하지도 못하는 잘못 배달된 택배 같았다’(「이번 생은 연습이었어」)는 그녀가 기도한다. 이번 생은 연습이었으니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다음 생, 커튼콜을 받을 수 있는 다음 생을 주시라고.
하지만 나는 감히 다른 의견을 내 본다.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손거울을 사랑했던 남자’가 아까웠을 이번 생을 놓고 가는 것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그녀, ‘이젠 떠나도 좋겠다’, ‘잠자듯 가고 싶’(「오월의 몸살」다 참말을 하는 그녀는 이미 자신이 그 누구보다 커튼콜을 받을 만한 생을 살아냈음을 알고 있는 거라고. 설사 주어진 운명이 불공평해 보이는 시련의 연속이었을지언정 길을 잃지 않고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해설」)난 그녀는 지금 너무나 아름답다고.
시집을 낸 작가답게 놀랄만한 수사와 수많은 시적 표현들을 산문 속에서 만나게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이번 생에서 혹독한 실전을 잘 치러낸 그녀가 다음 생에서는 연습같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다만, 연습도 실전처럼 또 진지하게 살아 낼 그녀인것만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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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환 (혜윰서평단) |
안산신문 ansan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