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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동화작가> |
모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오랜 세월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청률이 낮으면 금세 단명으로 끝나는 게 TV 프로그램 속성이다. 2012년 8월 첫 방영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상에 지친 사람이 자연 속에서 행복을 되찾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내용은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인기 유지 비결 그 속엔 공통분모가 들어있다.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자연과 동화된 듯, 게다가 주인공이 된 듯한 대리경험까지 느끼기 때문이다.
자연인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나 문화에 속박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뜻한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인공은 대부분 일반인처럼 살아오다가 건강문제, 사업실패, 인간관계 붕괴 등 어떤 계기가 생겨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다. 요즈음 들어 자연인을 보면서 문득문득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오버 랩 되는 것은 왜일까?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전형수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전 씨는 이 대표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뒤에도 초대 도지사 비서실장까지 역임했다. 그야말로 이 대표의 복심 중 복심이다. 그런 복심이 노트 6장 분량의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 대표 관련 인물 중 지금까지 숨진 사례는 전 씨를 포함 5명에 이른다.
2021년 12월 10일,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2021년 12월 21일,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22년 1월 12일, 이 대표의 과거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던 이모 씨가 모텔에서 숨졌다. 2022년 7월 26일,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연루된 배모 씨의 지인인 40대 남성이 자택에서 숨졌다.
이번 전 씨의 죽음을 놓고 여야 간 극명한 견해차와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네 탓 타령으로 울컥울컥 화가 치민다. 이 대표는 전 씨의 죽음을 놓고 검찰의 과도한 수사 탓으로 돌리며 자신 탓이 아니라고 또 항변하고 있다. 이 대표 측근들도 광기 어린 검찰 탓이라는 맹비난과 억울한 죽음, 정치 도구로 활용하지 말라고 시도 때도 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찰 측은 작년 12월 한 차례 조사 외엔 별도 조사나 출석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말 이번에도 이 대표 자신과 관련이 하나 없는 도미노 죽음일까? 이 대표는 지금까지 유명을 달리한 5명의 죽음에 한 번도 책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전 비서실장의 조문에 6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조문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조문을 끝내고 가는 이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떠났다. 그의 심중에 꼭꼭 감추고 있는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도대체 5명의 고인은 왜 소중한 목숨까지 버려야 했을까?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고 행복을 함께 누리는 가족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여야 간 주장대로 이 대표 탓일까, 검찰 탓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전 씨의 유서는 유족들의 반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유서 중 이 대표에 관한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더이상 희생은 없어야 한다.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시라.’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 씨는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현재 이 대표는 당 안팎으로 거세어지는 압박에 입지가 불안정하다. 지난달 27일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대거 이탈표가 확인되면서 계파 간 내홍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대표가 아무리 전 씨의 죽음을 검찰 압박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제 이 대표는 모든 걸 내려놓고 개인 자격으로 검찰의 수사를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 대장부답게 떳떳하게 검찰 조사를 받으면 된다.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그의 미래가 있다.
이 대표는 전 비서실장 발인 날, 정치집회 연단에 올라 지지자들을 향해 한껏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도 밤 9시 10분에 ‘나는 자연인이다’ 방송이 나온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 대표의 모습이 또 오버 랩 될 것이다.
안산신문 ansan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