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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가로등』

기사승인 2023.03.16  09: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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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일반 독서의 수준을 넘어 그 속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내는 작업은 때로는 지난하고도 힘든 작업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그 일이 열 권 스무 권을 넘어 수없이 되풀이된다면 단순한 독서의 즐거움만을 기억하는 일반 독자들로서는 그 재미없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당연히 서평가는 그 일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와 함께 서평은 부분적인 섬세한 감상에 쉽게 몰입하는 것보다는, 보다 이성적으로 이야기 전체를 폭넓게 보는 달인다운 능숙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현미 작가의 『책 읽는 가로등』은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하였으나 내용에서는 책 속에 담긴 삶들을 담담한 가슴으로 해석해내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책 읽는 가로등』은 1부 심상 가로등, 2부 생각 가로등, 3부 이야기 가로등, 4부 동심 가로등, 5부 영상 가로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동문학과 수필, 평론에 이르기까지 정식 등단, 빼어난 역량으로 활동중인 저자답게 시, 수필, 소설, 동화, 영화의 각 작품을 알차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시종 담담한 필치로 책과 영화 이야기를 적고 있으나 사실은 그녀의 글 이면에는 서평가의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제5부에 실린 “고산자” 편이다. 
  “고산자를 영화나 소설로 만나게 되면 한동안 고산자 가슴앓이를 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고 섹시하니까. 그래서 시대를 넘어 그의 가난과 고독을 어루만져주고 싶어질 것이고, 그의 뜨거운 가슴과 영혼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239쪽)
  여기에서 저자가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얼마나 크고 깊은 감동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옳은 일에 대하여 반응하는 이만한 크기의 격정과 열정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백 년 전쯤의 봉건시대 어느 시인이 이런 저자를 보았다면 아마도 “양갓집 규수의 몸으로 사내보다 훨씬 큰 뜻을 품었다.”라고 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책 읽는 가로등』의 서평들은 작품에 담긴 지엽적인 섬세한 감상들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고 현명한 객관성을 시종 유지하고 있다. 제3부의 소설 『밝은 밤』을 평한 부분에서도 저자의 그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백정의 딸이라는 꼬리표에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증조모, 사기 결혼의 피해자임에도 홀로 딸을 키우며 주변의 모진 입방아를 참아내야 했던 조모, … 복잡한 태생의 비밀을 갖고 사느라 늘 포기가 빨랐던 엄마,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해 홀로서기 연습중인 ‘나’. 모계 4대의 삶이 녹록잖다.”(141쪽)
  모계 4대의 100년간의 이야기를 적은 『밝은 밤』의 사연들은 남자인 필자가 보아도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들인데도 저자는 침착하다. 오히려 증조모에서 ‘나’에 이르는 억울한 사연들을 흡사 사무적인 것 같은 말투로 태연하게 들려준 후 간결하게 절제된 한마디 “녹록잖다”로 끝내고 있다. 저자의 이런 능숙함은 서평집 『책 읽는 가로등』 전편에 부족함 없이 넘쳐나고 있어서 은연중 독자에게 안정된 신뢰감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평은 먼저 그 책에 담긴 여러 요소 가운데서 공통점을 추려내어 하나의 개념을 구성하고, 성향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복잡한 가는 선들을 굵은 한 개의 선으로 단순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작업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멋진 사례를 제4부 『행운이와 오복이』 편에서 볼 수 있다. 
  “… 하지만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다거나, 좀 가졌다고 못 가진 이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행동은 삼가길 바란다. 그런 못된 행동들이 모여 결국 이렇게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은가.”(185쪽) 
  서평가는 책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가슴을 울리는 주장을 찾아내고 때로는 뜨겁게 동조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대상에 대하여 분연히 싸움을 걸고 있다. 이 얼마나, 책 속에서 굵은 한 줄기를 담아내고 있는 서평가의 멋진 투지인가. 독자인 나도 그 싸움에 동참하고 싶어질 만큼 정제된 그 굵은 선은 매력적이다. 이것은 또한 저자가 표방하는 에세이서평이 갖는 매력이기도 하다. 
  제33회 전국 성호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에세이 서평집 『책 읽는 가로등』은 그 참신한 내용과 친근하게 다가오는 문장으로 이미 많은 독자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필자 역시 이 책을 읽고 좋은 책들이 주는 향기에 푹 빠지는 행복을 누렸다. 또한 서점에 가서나 도서관의 서가에서 주저하지 않고 집어들 좋은 책에 관한 정보를 얻었음은 물론이다.
  대부분 책은 교훈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평집 역시 그러한 책들 속에서 더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니 일반 독자와 문학하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생을 감당하고도 가슴에 남는 공간이 조금은 있어야 한다. 서평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넉넉한 가슴인 것이다. 넉넉한 가슴으로 쓰여진 책 『책 읽는 가로등』과 저자의 크나큰 성취에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이장범 수필가 (혜윰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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