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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5>

기사승인 2021.04.07  09: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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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협지로 닥치는 대로 읽기를 익혔다.

1963년에 출판된 ‘정협지’로 한국 최초의 번역된 무협 소설로서 수많은 애독자를 가지고 있다. (수원문화재단 자료 인용)

“대개 책들을 한곳에 모아서 정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집 안에서도 여기저기에 책을 두어야 합니다. 거실 소파 옆 사이드테이블 위에도, 식탁 위에도, 침대 옆이나 화장실에도 그야말로 책을 ‘뿌려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때든 책을 집어 들고 펴보면 됩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재미가 없어서 껐는데 옆에 책이 보인다면, 그걸 넘겨보게 되지 않을까요?” - ‘이동진’의 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에서 인용 -
 
   무협지로 닥치는 대로 읽기를 익혔다.

   지나온 일생 중 가장 어려웠던 시절은 광명시에 살던 때이다. 물론 필자가 좌절하거나 절망한 때는 아니고, 우리 집의 경제적인 사정이 그랬다는 것이다. 지금의 광명 사거리는 버스 종점이었고, 광명시장과도 인접해 있었다. 종점에서 서남쪽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무허가 판자촌이 나온다. 방 두 칸이 있는 집에 방 하나를 얻어 세를 살았다. 다섯 식구가 칼잠을 자야 할 정도로 작은 방이었다. 마침 좁고, 아주 낮은 다락방이 있어 독방을 갖고 싶었던 필자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비록 작은 공간이었지만 창문까지 있어서, 필자에겐 서고이자 도서관이고 음악감상실이자 힐링 공간이 되었다. 다락방이니 지붕의 경사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계단 반대편 벽 안쪽에 책장을 겨우 기대어 놓을 수 있었다. 그 책장에는 한국소설 단편집 몇 권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박인환의 시집 ‘목마와 숙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이 있었다. 또 몇 권의 록 음악 잡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가 있었다. 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산 것이었다. 삼수하는 동안은 집에서 입시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마을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한 이웃 주민을 만났는데 만홧가게를 하다 망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집에 무협지가 가득 있으니 보고 싶으면 가져다 보아도 된다고 하였다. 실제로 한 방 가득하였다. 신났다.
   보통 무협지는 5권 한 질이 기본이고, 7권 또는 10권으로 된 것도 되어있다. 어떤 경우는  한 질을 한 부로 보고 두세 부가 되는 것도 있었으니 낱권으로 20권이나 30권을 보아야 내용이 완결된다. 하루에 1권만 보아야지 하다가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적어도 5권을 독파하게 되었다. 온종일 읽었다. 무엇보다 흥미진진해서 가능한 일이다. 위지문(尉遲文)의 ‘정협지’의 악중악은 아직 기억에 남는 주인공 이름이다. 그리고 와룡생(臥龍生)의 ‘군협지’ 이 두 권의 무협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 무협 소설이고 경향신문에 연재하였으며, 후자는 삼국지 다음으로 많이 읽힌 동양소설이라고 하니 말이다. 방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 쌓여 있는 무협 소설은 제목도 다양하였고 다 읽겠다고 생각하니 흥분되었다. 읽다보면 드넓은 천하를 주유하는듯한 착각을 일으켜 현실 세계를 잠시나마 이탈하게 만들었다. 또한, 독서의 재미를 느끼고 몰아치며 읽는 능력을 길러주고 새로운 독서 경험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신문 ‘경북매일’ 윤희정의 기사에서는 “협객의 역사로 그려 단순한 대중적 오락물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 문화코드로 그린 것이 허풍이 심하긴 하나 여름밤 속독신공(速讀神功)의 독서로는 단연 으뜸이다.”이라 했다. 그렇다. 신공의 수준으로 읽어나가는 기술을 습득하려면 단연 무협지다. 재미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또 이 기사에서 ‘칼의 노래’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어린 시절을 무협 소설을 받아 적었다는 일화도 소개하였다. ‘정협지’를 번역 연재한 김광주 작가는 김훈의 부친이다.

정치면을 제외한 문화나 사회면에서 여러 관심 분야의 주제들에 대해서 스크랩을 하고 있다. 최근엔 기사를 오리고 기록하는 일이 힘들어 해당 기사가 있는 면 전체를 접어 보관한다. (가장 최근엔 정리한 신문 스크랩)

   당시에는 수백 질도 넘는 무협 이야기 중 어떤 것이 더 좋고 어떤 작가가 훌륭한지 가려낼 역량이나 식견이 없었다. 그러나 독특한 내용으로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독검만리행’이라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와룡생’이라는 작가 이름이다. 소설 대부분이 ‘와룡생’이 지은이로 되어있어 상식적으로 수많은 줄거리를 창조하는 것이 힘들 것이니 당연히 가명일거라 생각했다. 어떤 등록상표처럼 자연적으로 붙이는 이름쯤으로 알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실존하는 대만의 유명작가이고,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수많은 작가가 그의 이름을 도용하였다는 것은 먼 훗날 알게 되었다. 많은 소설을 짧은 시간에 읽어내리다 보니 약간의 내공이 생겨 무술의 종류나 무기의 이름도 외우고, 주변 무협 소설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 마치 한 문파에 속한 협객처럼 기량을 겨루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 무술영화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그 연유는 무협 소설을 통해 익힌 각가지 지식을 가지면 동화가 잘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무협 소설에 너무 빠지자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 읽기를 끊었고, 또 이사까지 하게 되어 별난 인연도 마감하였다.
   어쨌든 그 시절에 익힌 속독 기법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무협지를 끊은 다음 무엇이든 읽을거리를 찾아 닥치는 대로 읽는 습관과 관심 분야를 수집하는 수집벽까지 생겼다. 잡지 ‘샘터’ 그리고 가판대에서 산 이런저런 신문과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도 놓칠세라 읽고 일부 내용은 스크랩하여 보관하였다. 신문을 사면 버스 안에서 내릴 때까지 읽었다. 그러면 지루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신문을 읽기 위해서 차를 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문뿐만 아니다. 무료로 배포하는 영화 포스터(단색으로 인쇄된 A4 정도 크기용 홍보용 포스터) 등 글이 있는 것이면 다 읽었다. 얼마 전 사무실 책을 정리하면서 예전 신문 스크랩이 나와 보니 신문은 누렇게 변했고 일부는 종이가 삭아 내렸다. 주로 환경, 문학, 도시, 역사 분야니 특이한 내용이 있으면 다 모았던 셈이다. 오래 두려면 보관을 잘해야 했는데 하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버렸고, 보관용은 창고로 보냈다. 조선 후기 문신 홍석주는 평생 읽은 책과 읽고 싶었던 책을 선정하여 목록을 만들고 내용을 요약하여 수록한 ‘홍씨독서록(洪氏讀書錄)’에서 ‘세상의 책 가운데 볼만한 책이 아주 많다. 그러니 네가 번거롭고 복잡하며 잡다한 책을 닥치는 대로 마구 읽는 방식을 벗어났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지만 닥치는 대로 읽고, 펼쳐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방식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동진 평론가처럼. 그리고 신문 분야별로 수집하는 습관도 그대로다. 또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겠지만.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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