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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수집기<3>

기사승인 2021.03.17  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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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키워준 문화적 상상력

박광수 작가의 컷도 만화의 한 분야라고 본다. 컷 모음집인 ‘광수생각’은 사서 읽은 책 중에 하나다. 위 그림의 제목은 ‘참 잘했어요’다.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 ‘박석환’의 글 ‘내 인생의 이상무 그리고 독고탁의 시대’에서 인용함-
 
   만화가 키워준 문화적 상상력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 좁은 골목길을 200m 정도 들어오면 옛 우물터에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 직전 오른쪽에 작은 만화책방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필자에겐 유일한 동네 도서관이었다. 나중에 무협지가 들어왔지만, 그 전까지는 만화책만 가득한 약간 어두운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었지만 매일 출입하지는 못했다. 돈이 없었고, 다니다 들키면 아버지에게 엄청 혼날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못 가게 한 이유를 당시에 나름대로 생각했을 때는 만화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만화 보기에 중독이 되면 공부를 못할 것으로 판단하신 것 같았다. 그러니 만화를 집으로 빌려오는 일은 전율 넘치는 모험이었고, 도전이었다. 돈이 조금 생기면 부모님이 출타하시길 기다렸다가 집을 보는 임무를 부여받고 두 분이 떠나자마자 만화책을 빌리러 달려갔었다. 보통 세 권 정도를 빌려와서 귀가하시기 전에 반납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세 권이 한 세트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져보니 당시 만화는 사회에 추방해야 하는 일종의 ‘사회악’이어서 규제가 많았던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만화책방에는 불량 학생들이나 가는 곳으로 규정했다. 자료에는 어쩔 수 없이 작가들은 ‘명랑만화’ 만을 그렸다는 암울한 시기였을지 몰라도 그들이 그리고 쓴 만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서민 동네 학생들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가슴 속 웅지를 키우는 데 이바지하는 순기능이 분명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이자 예술감각을 키우는 도구였다고 하면 지나친 평가일까? 지금도 가장 떠오르는 시리즈는 임창 작가의 ‘땡이 만화’인데 그중에서도 ‘땡이와 사냥기’는 동물들의 생태와 습성을 이용하여 사냥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필자에겐 사냥 기술보다는 숲과 자연의 변화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어서 책을 볼 때 늘 흥미진진하였다.
   김산호 작가의 ‘라이파이’는 일종의 SF 만화였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보기보다는 다른 행성에서나 일어난 일을 보여주는구나 하며 보았다. 한 동네에 TV가 몇 대 없던 시절이니 만화를 보는 시간은 비록 흑백 그림이지만 머릿속에선 총천연색으로 바뀐 영화를 보았고, 그 속에서 주인공이 말을 타면 함께 타서 달리고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것 같은 군용차를 운전하곤 하였다.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사랑 이야기와 바둑 이야기로 잘 알려진 강철수 작가는 그 이야기 이전에 ‘미국 서부시대, 특히 기병대 이야기를 그렸고, 이근철 작가는 독일군 이야기를 연재했다. 지금도 왜 관련된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지 그 뿌리를 찾아가 보면 만화가 있다. 가끔 아버지가 사다 주신 소년 잡지가 있었는데 잡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연재된 만화를 애독한 기억은 남아 있다. 어떤 만화는 잡지가 닳도록 여러 번 읽었었다. 아마 별책부록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독립군 홍범도 장군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린 소년에겐 가슴 뭉클한 내용이었고, 조국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 만화를 꽤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는데 최근 소장 서적을 총정리할 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으나,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른 만화들과 마찬가지로 분실된 것 같다.

필자의 사무실 책장에는 ‘먼나라 이웃나라’가 여러 권이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그 나라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다시 읽어본다. 러시아 편은 최근에 구매한 것이다.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종이에 인물이나 동물들을 그리는 것이 취미가 되었고, 그런 필자를 보고 친척 어른들로부터 “저 녀석은 나중에 커서 만화가나 미술가가 될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사생대회나 미술전을 하면 작은 상이라도 꼭 받았다. 중학교 때는 미술반을 하였고, 고등학교 때도 미술반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본인은 미술대학으로 진학해야 하나보다 생각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와 자신감의 부족으로 미술대학은 가지 못했다. 이후에도 언젠가는 미술 공부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오늘날 문화 예술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고 작은 미술 소품을 수집한 연유가 되었다. 시점이 잘 정렬되지는 않지만, 한때 이현세 ‘남벌’로 보느라고 스포츠신문을 사보았고, 그가 낸 작품은 거의 다 찾아보았다. 또 고우영의 초판 삼국지도 여러 번 읽었고(물론 글로 된 삼국지도 두 번 읽었다.), 수호지, 십팔사략 등의 시리즈도 읽었다. 한때 신문가판대에서 팔기 시작한 주간잡지 모양의 만화책인 김철호 작가의 ‘권투와 이소룡, 한국의 주먹’ 이야기 들도 떠오른다. 출장을 갈 할 때면 곡 한두 권을 사서 읽었다. 최근엔 허영만의 ‘식객’과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였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만화는 “종종 그림의 컷이 나란히 연결된 형식이다. 대화, 서술, 음향 효과 기타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말풍선, 짧은 해설, 의성어 등의 방법을 사용하며, 컷의 크기와 배열로 묘사의 속도를 조절한다. 만화와 유사한 형태의 삽화는 만화에 쓰이는 가장 흔한 이미지 제작의 수단이다. 만화의 흔한 형태로는 연재만화, 시사만평, 만화책 등이 있다. 20세기 말 이후, 그래픽 노블, 코믹 앨범, 단행본 등의 합본이 점차 흔해졌고, 21세기 들어 인터넷상의 웹 만화가 확산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09년은 한국만화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한 일간지(중앙일보 2009년) 기사 - ‘타임머신 타고 구경하는 한국만화 100년’에 따르면 한국만화의 역사를 ▶풍자로 그려낸 저항의 시대(1909~1930년) ▶암울한 시대의 위안(1945~1970년대) ▶한국만화의 르네상스(1980~1990년대) ▶한국만화 지형의 다변화(2000년대~현재) 등 4개 시기로 나누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만화가 하나의 문화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자유롭고 다양한 주제와 기술과 표현 방법을 이용하다 보니 가장 최신 기법이 총동원하는 장르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만화가 영화가 되고 새로운 인기 캐릭터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적어도 백몇십 권을 사서 책장에 꽂아 둔 것 같은데 남은 것은 ‘식객’과 ‘먼나라 이웃나라’ 몇 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도 이 책들을 보면 만화를 좋아하며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이 소환된다.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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